
2025년 10월 29일, 프랑스 의회는 형법상 강간죄 정의를 ‘폭행·협박·위협·기습’이 아닌 ‘동의없는 성적행위(tout acte sexuel non consenti)’로 전면 개정했다. 프랑스 형법 제222-23조(강간)은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동의는 자유롭고, 알린 바 있으며, 구체적이고, 사전적이며 철회 가능하다. 그것은 정황을 고려하여 평가된다. 피해자의 침묵 또는 반응 없음만으로 동의가 추정될 수 없다.” 또한 "폭력·강제·위협·기습이 존재하는 경우엔 자동으로 동의가 없다"고 규정하는 조문이 더해졌다.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으로 인정하는 틀을 넘어, ‘동의 없으면 성폭력’이라는 원칙을 법률에 담은 것이다. 프랑스 형법상 강간죄 개정을 환영한다.
약물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이번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약물을 사용해 배우자의 의식을 흐린 상태로 만들고 다른 남성들과 함께 강간하고 학대하는 폭력이 9년간 이어졌다. 피해자인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는 2024년 말 모든 가해자 유죄판결을 이끌어냈고, 2025년 7월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재판에서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프랑스 형법이 ‘폭행·협박·위협·기습’을 요건으로 강간을 정의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했거나 의식이 없던 상황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현실이었다. 결국 법원은 피해자의 의식이 없거나 취약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관계는 동의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 사건은 형법상 강간죄 개정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입법부의 초당적 합의도 주목할 부분이다. 형법 개정안은 여당인 르네상스Renaissance당과 녹색당Europe Ecologie Les Verts이 주도했는데, 사회당, 공화당 등 주요 정당의 초당적 참여 속에서 통과됐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계열은 “동의의 개념이 주관적이며 남성을 범죄자로 만든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대부분 정당의 지지 속에서 하원과 상원에서 높은 찬성율로 통과됐다. 에리크 뒤퐁-모레티 법무장관은 “이제 침묵은 더 이상 동의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한국 형법 강간죄는 1953년에 멈춰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라는 규정이 오늘도 계속된다. 폭행·협박을 가장 좁게 해석하여 현저히 저항이 곤란할 정도였는지를 피해자에게 따지고 있다. ‘최협의 폭행협박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는 선고가 반복된다. 한국의 법과 사법체계는 피해자에게 ‘더 강하게 더 세게 저항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행 형법은 술, 약물, 경제적 조건, 심리적 신체적 취약성, 친밀한 관계 내 지배와 통제 상태에서 발생하는 70% 가까이의 강간을 해결하지 못한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형법상 강간죄 개정을 당장 추진해야 한다. 학교, 직장, 거리, 군대, 스포츠팀, 종교단체, 숙박업소, 클럽 모든 곳에서 “저항해라”가 아니라 “동의해야 가능하다”를 명확한 원칙으로 작동케 해야 한다. 동의는 “자유롭고, 명시적이며, 구체적이고, 철회가능한 동의”여야 한다. 수사·재판 전 과정에서 피해의 회복과 가해의 예방이 진전되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 법조계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피해자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말라. 한국정부와 국회는 형법상 강간죄를 개정하라.
2025년 10월 31일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