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교제폭력’, ‘강력범죄’, ‘여성살해’는 다른가?
- 이재명 대통령의 ‘스토킹 엄정 대처 요구’와 정부·국회의 대응에 부쳐 -
연이은 여성살해 사건 발생에도 묵묵부답인 정부의 반응에, 7월 31일 오전, 여성폭력 엄중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주도하여 ‘여성살해 및 여성폭력 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신고 후에도 피살당한 여성들, 여성에게 국가의 기능은 상실되었다’를 개최했다. 이날 오후,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관계 당국에 ‘스토킹’에 대한 엄정 대처를 요구하자, 관련 기관들이 대책을 논의하거나 발표하기 시작했다. 8월 11일 오전 경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제작하여 일선 현장에 배포했다고 알렸으며, 같은 날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사회1분과가 개최한 ‘교제폭력·스토킹 강력 대응을 위한 민관합동 간담회’에는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대검찰청이 참여해 ‘교제폭력·스토킹 대응 강화 등을 포함한 국정 과제 수립·이행 방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에서는 8월 1일 성명을 통해 ‘8월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해 조속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며, 8월 6일 조국혁신당에서도 ‘젠더기반 폭력 종합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가 살해당하고, 시민들이 분노한 후에야 급히 내놓은 대책이 여성폭력의 현실을 타개하는 데 충분한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2024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폭력 피해 있는 초기 상담 6,863건 중 전·현 배우자, 전·현 애인 및 데이트 상대자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 피해는 전체 상담 건수의 과반인 52.8%(3,626건)에 달한다. 또한 피해자가 경험하는 폭력 행위는 폭행·구타와 같은 물리적 폭력, 폭언·멸시·위협 등 정서적 폭력, 스토킹 등이 중첩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6월 19일 부평에서 발생한 남편에 의한 여성살해 사건만 해도, 가해자는 흉기를 들고 피해자를 협박해 임시조치를 받았고, 해당 기간이 종료된 후에 피해자와 아들을 지속적으로 찾아가 자택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위협했다. 피해자에게 다양한 폭력을 행사한 끝에 가해자는 결국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해자는 수차례 신고했으나 경찰은 긴급 임시조치 판단조사표에 10점 만점 중 2점으로 평가하여 별도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스토킹인가, 가정폭력인가, 강력범죄인가, 여성살해인가. 우리 사회는 현재 이 우문 앞에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가정폭력으로 처리했다. ‘스토킹범죄’로 취급했다면 피해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2023년 기준 일반 폭행·협박 범죄 발생 대비 검거율이 96%에 달하는 것에 반해, 가정폭력 범죄의 검거율은 신고 건수 대비 검거율이 19.29%로 나타났다. 데이트폭력(교제폭력)·스토킹 역시 신고 건수 대비 검거율은 10% 이하로 집계되었다. 문제는 폭력의 유형이 아니라, 왜 ‘친밀한 관계’에서 범죄가 발생할 때 대응하지 않는가이다.
한국에서 여성폭력 사건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1994)」,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1997)」,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2021)」 등 분절적으로 구성된 법·제도 하에 처리된다. 그러나 여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은 가정폭력, 데이트폭력(교제폭력), 성폭력, 스토킹 등 개별 유형으로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폭력을 분절적 유형 안에 욱여넣을 수 있다는 수준의 인식으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았다’며 피해자 보호 실패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수준의 인식으로는,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다’라며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수준의 인식으로는, ‘가정폭력’으로, ‘교제폭력’으로, ‘스토킹’으로 신고해도 줄줄이 살해당하고 있는 작금의 황망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데이트폭력(교제폭력) 관련법을 별도로 제정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전에, ‘가정의 유지와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가정폭력처벌법을 법명부터 부칙까지 전면 개정하라. 피해자 인권 보장을 목적으로, 다양해지는 친밀한 관계를 포괄할 수 있도록 개정하라. 행위를 나열하여 가해자의 행위가 그에 해당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전에 ‘통제’라는 본질에 맞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스토킹 처벌법을 개정하라.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데 실패했다. 가해자의 접근을 전면 차단할 수 있도록 체포 우선주의 도입하라. 임시조치(잠정조치)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조항을 강력히 활용하라. 긴급응급조치 임시조치(잠정조치) 위반에 대해 적확한 제재 조치 시행하라. 그 무엇보다 수사·사법기관 이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최대의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훈련하라.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관심이 7월 31일 오후, 찰나에 그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보며 필요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라!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