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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발생하는 여성의 죽음 앞에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여성살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책없는 반응에 부쳐

 

지난 7월 26~31일 엿새 동안, 4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 혹은 친밀한 관계를 요구하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 4명의 피해자 모두 사건 이전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끝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어 중태에 빠졌다. 이에 경찰청은 지난 7월 29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을 위해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를 진행했고, 7월 31일에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스토킹 피해를 세 번이나 신고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해주지 않아서 결국 살해당했다고 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며, “관계 당국이 이를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자성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제도 보완에 속히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같은 날 오후, 유재성 경찰청장은 “폭력 범죄 대응을 위해 전자발찌 부착 등 가해자 집중 관리와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계성 범죄 종합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7월 기준 스토킹 접근금지 조처를 받은 가해자 3,043명에 대한 전수 점검을 8월 한달 동안 실시하여 위험성 여부에 따라 전자발찌 부착, 유치장 유치 등을 추가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경찰은 마치 여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살해당하는 일이 금시초문인 듯 뒤늦게 움직이며 근본적인 대책 없는 후속 처리에만 머물렀다.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여성이 살해되는 것은 결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불과 6월에는 대구와 부평, 5월에는 동탄, 그전에는 구미, 거제, 인천에서 여성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무엇보다도 분노스러운 것은 경찰에 신고하여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김남희 의원실이 입수한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중 (전)연인이나 (전)배우자에 의해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은 총 13건이며 사망자는 모두 여성이라고 한다. 신고를 했음에도 보호조치까지 가지 못했거나 종결된 사례 등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한 해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받고 있었음에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피해자(주변인 포함)는 114명(17.5%)에 이른다.1) 피해자 본인이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결국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실패를 보여주는 참담한 숫자다. 

 

피해자 보호에 처절히 실패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가장 시급한 조치는 초동 대응 및 피해자 보호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피해자가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았다”, “위험성이 부족하다”, “가해자가 앞으로 찾아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등의 변명으로 국민 보호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 본인에게 전가하는 초동대응과 사건 처리 관행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수사·사법 기관은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을 포함한 여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해 가해자를 체포·유치하여 피해자와 실질적으로 분리하고 가해자를 제재하는 데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이 잠정조치 신청을 해도 검찰과 법원에 의해 기각되는 것은 다반사이다. 용혜인 의원실에서 제공한 2023년 스토킹 112신고 처리 현황에 의하면,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잠정조치 신청 건수는 신고 건수 대비 32%뿐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16%는 기각됐다. 실질적으로 가해자를 피해자와 격리시킬 수 있는 유치(잠정조치 4호)의 경우, 신고 건수 중 3.7%만 신청되지만, 그마저도 승인되는 건수는 절반에 불과하다. 스토킹 범죄의 해석도 제각각이다. 최근 의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도 검찰은 “스토킹 반복으로 볼 수 없다”며 경찰의 잠정조치 신청을 기각했고, 피해자는 며칠 뒤 살해됐다. 다른 사건에서는 5시간을 지켜보고 사진까지 찍은 가해자를 법원이 ‘일회성 스토킹’이라며 무죄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 수사·사법 기관이 가해자 제재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피해자는 살해당하거나, 폭력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관계 유지를 목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무력화되었다. 전통적인 혼인, 가족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의 피해자는 이 법이 보장하는 피해자 보호조치를 받는 데 한계가 있다.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오래된 개정 요구에도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이들 모두 이 여성들의 죽음에 공범으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경찰, 검찰, 법원, 국회 등 관계 당국의 개별적 조치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실행하고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역차별'에 대한 대처를 운운하며 '남성들이 불만을 가진 이슈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는지 묻고, 충분한 예산과 권한을 갖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성평등 총괄 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장관석은 17개월째 공석으로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최근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조차 자격 미달이었다. 

 

이 같은 현실은 정부가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여성폭력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반복되는 여성살해는 가해자 개인의 일탈도, 피해자 개인의 불운도 아닌 사회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며 명백한 국가와 제도의 실패다. 불과 이번 주에도 김해, 진해와 서울에서 세 명의 여성이 또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 수십년 동안 재난처럼 지속된 여성살해는 대통령의 반나절의 관심과 단발성 질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건 보도로 여론의 주목을 받는 순간에만 사후 임시방편을 논의하는 것을 넘어선 근본적인 대책 없이 여성의 죽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부는 관계 당국에 조치 주문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여성폭력 종합대책을 직접 수립·제시하고 신속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정과제와 중점전략과제에 여성폭력 대응을 포함하고,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에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며, 예산과 인력, 제도적 기반을 총동원하여 더 이상 살해되는 여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책임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질적인 대책으로 응답하라.

 

 

1) 한국여성의전화(2024), 「2024년 분노의 게이지-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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