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해도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 동탄 가정폭력 여성 살해 사건에 부쳐
지난 12일, 가정폭력으로 경찰의 보호조치를 받고 있던 또 한 명의 여성이 사실혼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해당 여성은 사건이 있기 전 경찰에 3차례나 신고하였으며, 100m 이내 접근금지 및 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제한 등의 '긴급임시조치'와 함께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가해자는 피해자가 피신해 있던 지인의 숙소에 찾아가 피해자를 납치하고 끝내 살해하였다.
경찰은 앞선 두 번의 신고에서는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거부’했고, 세 번째 신고에서는 임시숙소에 갈 것을 권유했으나 ‘피해자가 가해자가 모르는 지인의 숙소로 이동하겠다’고 했으며, 사건 당일에는 ‘스마트워치가 가방 속에 있어 신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이 사건 한 달여 전 600쪽 분량의 고소보충이유서를 제출하고 "보복 등이 우려돼 가해자를 구속 수사해 달라" 요청했고, 경찰도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사전구속영장 신청을 결정했음에도 10여 일이 지나도록 신청에 필요한 서류 작성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또 한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사망하는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4년 작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처한 피해자(주변인 포함) 650명 중 114명(17.5%)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어도 여성살해의 결과를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참담한 숫자다.
여성들이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피·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분리 조치는 되지 않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 가정폭력으로 112에 신고된 230,830건 중 기소 인원은 14,997명 에 불과, 단 19%만이 입건 처리되었고, 구속 인원은 578명, 1%도 되지 않는다. 2023년 가정폭력 가해자 검거 건수가 44,524건이었음에도 경찰이 수사단계에서 직접 긴급임시조치를 취한 비율은 14%(6,502건), 임시조치를 신청한 비율은 16.1%(7,189건)에 그쳤다. 임시조치 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 건수에서 5호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는 225건에 불과하다. 가정폭력 응급조치 현황 중 현행범인 체포 건수는 경찰이 별도 관리하지 않아 확인할 수도 없다. 국가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에게서 도망치라고, 숨으라고, 조심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제대로 된 대책 마련도 가해자 처벌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며 여성 관련 정책은 외면하던 지난 정권 내내 여성들은 매일 목숨을 잃거나 위협받았다. 여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가 내놓는 정책이라고는 피해자 보호 장치 강화, 쉼터 유형 다양화, 민간 경호 지원 등 뿐이었다. 조기 대선을 2주 앞둔 현재, 차기 정부를 이끌어갈 대선 후보들에게서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동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준석 후보는 이 사건 관련해서 단 한 줄의 의견도 내지 않았으며, 2021년 국민의 힘 대표 당시에는 젠더폭력 근절 목소리에 대해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 '젠더갈등화'라고 표현하며 젠더 기반 폭력 문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6일 여성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공약을 발표했으나 '교제폭력 범죄에 피해자 보호명령 적용, 접근금지명령, 불응 시 유치장 유치' 등의 기존 정책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며, 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성차별’에는 침묵하고 있다.
반복되는 여성살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피해자가 목숨을 위협받고, 보복을 두려워하며 숨어 지내야 하는가. 그동안 국가가 여성폭력과 성차별을 방관하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여성의 목숨을 잃었다. 여성살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국가적 재난이자 국가의 책무이다. 더 이상의 무관심은 용납할 수도,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는 국가가 정치가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응답할 때이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