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폭력, 신고해도 죽음을 막지 못하는 국가
– 제대로 된 실태 파악, 가정폭력처벌법 전면개정, 인식개선 모두 시급하다
지난 10월 31일, 서울 은평구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인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아들이 긴급체포 되었다. 경찰조사 내용에 따르면 사건 당일인 10월 27일, 아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술값을 달라고 욕하며 폭행하여 우발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아들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는데, 실제로 아버지는 아들을 협박하고 폭행한 혐의로 두 차례나 입건되기도 하였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이른바 ‘존속살인’의 피의자가 된 사건은 지난 8월 서울 성동구에서도 발생했다. 유년 시절부터 가정폭력 피해를 겪은 손자가 가해자였던 할아버지를 사망케 한 사건으로, 할머니도 가정폭력을 겪어왔다고 한다. 해당 가정은 23년 12월부터 가정폭력으로 9차례 경찰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지난 7월 임시조치로 접근금지 결정이 있었으나, 가해자는 이를 2차례나 위반하여 체포된 바 있다고 한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가정폭력으로 신고했음에도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어버렸다.
한편, 피해자가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고양시에서 발생한 아내 살인사건, 5월 동두천에서 발생한 아내 살인미수사건, 8월 광명에서 발생한 아내 살인사건 등 이 사건들의 공통점 역시, 해당 사건이 있기 전 피해자들이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해 임시조치 등이 이뤄졌음에도 목숨을 잃거나 잃을 뻔했다는 것이다. 이 중 성동구, 고양시, 동두천시 사건의 경우 재발우려가정으로 지정되어 있었음에도 죽음을 막지 못했고, 광명시 사건은 재발위험평가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재발우려가정으로 지정조차 되지 못한 채 피해자가 살해당했다.
이처럼 가정 내 폭력에 대해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사이 수많은 죽음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여성폭력사건 발생 이후에야 뒤늦게 정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가 발표하는 공식 입장에는 항상 ‘사안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느끼고 있다’,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일반폭행·협박 범죄의 경우 검거율이 96%에 이르는 데에 비해 가정 내 폭력의 경우 신고 건수 대비 검거율은 19.29%에 그치고 있으며, 가정폭력 범죄 구속률은 신고 건수 대비 단 0.25%에 불과하다. 신고율 대비 기소율은 7.37%이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긴급임시조치 집행은 신고 건수 대비 2.82%다. 19시간에 1명씩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여성이 살해당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공식적인 국가 통계는 없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왜 가정 내 폭력에 대해서만은 유독 가해자 처벌을 하지 않는지, 피해자 보호 조치 비율은 왜 현저히 낮은지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져야 한다. ‘건강한 가정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가정폭력 처벌 없는 처벌법’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실질적으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인권과 안전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국가는 책임방기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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