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없는 ‘당연한’ 세상을 위해 나아가자
- 한국여성의전화 창립 41주년 -
6월 11일, 오늘은 한국여성의전화의 41 번째 창립기념일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 여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간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생존자, 회원, 24개 지부와 함께, 여성폭력과 성차별의 실태를 알리고 관련 법·제도 마련 및 개선에 앞장서며 각종 캠페인 등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는 너무 더디다. 최근 한 달간, 데이트폭력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바로 어제도 한 아파트단지에서 50대 남성이 과거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를 흉기로 공격했다. 정부의 책임방기, 입법공백, 인식개선 등이 문제점 및 대책으로 거론되었지만, 놀랍게도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찾자면, 서울경찰청이 지난 6월 4일 공개한 60대 남성의 머그샷 정도랄까. 하지만 이미 헤어지자는 말을 전하러 찾아간 모녀는 살해됐고, 머그샷이 다음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성폭력이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지우고, 어떤 한 가해자 개인이 저지른 문제 정도로만 인식하게 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그샷’이 아니라 그 전에 응당 취해졌어야 하는 조치들이다.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처한 피해자 568명 중 96명이 경찰에 신고했거나, 피해자 보호조치 등을 받고 있던 중”. 본회가 발행한 “2023 분노의 게이지-언론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이 포착한 현실의 한 장면이다. 신고를 했음에도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인은 최근 보도된 사건에서도 추정할 수 있다. 지난 2월 20일 새벽, 한 30대 남성이 헤어진 여성의 집에 찾아가 4시간가량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당시 집 안에 있던 홈캠에 찍힌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가 피해 전후로 가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았고, 사건 당시의 상황이 모두 촬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 불충분’이라며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보완 수사를 지시했다. 데이트폭력 사건은 피·가해자 관계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필수적으로 요한다. 이 같은 검찰의 몰이해는 마땅히 수사기관이 갖춰야 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며, 연이어 발생하는 유사 사건의 흐름 속에서 경각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역량과 인식의 부족, 총체적 난국이다.
여성폭력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회, 피해자 탓을 하지 않는 사회, 피해자의 안전이 확보되는 사회,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사회,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차별이 없는 사회, 정부와 국회와 수사기관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함께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 1983년,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창립 선언으로 지난 41년간 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공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변화를 만들어 온 것처럼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미 ‘상식’이기에 누구도 강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들에 대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목소리 내며, 성차별과 여성폭력 없는 ‘당연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관련 기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674428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