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경호 업체가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한다고?
- 국가는 민간에게 책임을 넘기지 말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책무를 다하라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6월부터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서 스토킹 등 고위험 범죄피해자에 민간 경호원을 배치하는 사업을 시행하였다. 경상남도자치경찰위원회 또한 유사한 사업을 시행, 향후 성과에 따라 지역 전체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청은 100명의 피해자를 민간 경호원 2명이 14일간 경호한다는 전제하에 7억의 예산을 투입, 피해자가 주거지를 벗어나 외부 활동을 하는 시간을 대상으로 본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피해자를 보호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들어 이 같은 정책을 내놓았으나 과연 타당한가. 전국 스토킹 신고 건수가 하루에만 100여 건 이상인 현실도, 스토킹 피해의 실상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다.
용혜인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7개월여간 접수된 신고 건수는 시행 이전 3년 4개월간에 비해 47.9%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거된 스토킹 피의자 중 구속율은 3.6%에 그쳤고, 실형이 선고된 1심 판결은 63건, 선고된 평균 형량은 13.4개월에 불과했다고 한다. 결국 처벌되지 않은 가해자로부터의 보복이나 위협, 추가 범죄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된다. 범죄를 저지른 대상은 가해자임에도, 국가는 왜 가해자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위험을 부과하는가. 따라서 피해자 보호 정책도 중요하지만,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본질은 외면한 채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정책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국민이 입은 범죄 피해에 대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마땅한 책무로, 본 정책은 이를 고스란히 민간에게 전가하는 꼴이다. 스토킹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매우 심각한 범죄이다. 이를 권한이 없는 민간 경호 업체에 맡긴다면 피해자뿐 아니라 주변인, 민간인 신분의 경호원 또한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이미 최초의 범죄 피해를 방지하는 데 실패한 국가가, 이 같은 위험은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셈인가. 지금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책무를 민간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불가침적 권리인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실효성 또한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본 민간 경호 사업은 신청자가 주거지를 벗어나 외부 활동을 하는 시간이 대상으로, 근접 동행, 피해자 실내 진입 시 건물 주변 대기, 사건 발생 시 증거 확보 및 경찰 도착 전까지 선제적인 보호 조치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2022년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 분석에 의하면, 스토킹의 가해자는 (전)애인‧데이트 상대자가 35.1%, (전)배우자 14.4%, 친족 11.7%, 직장 관계자 11.2% 순으로, 평소 밀접한 생활반경을 공유하는 관계 유형이 전체의 72.4%를 차지했다. 가해자를 격리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실외’ 활동 시에만 이뤄지는 민간 경호는 과연 무엇을 보호할 수 있는가.
경찰청과 경상남도자치경찰위원회는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민간 경호 정책을 당장 철회하라. 또한, 사법부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라. 정부는 스토킹처벌법과 방지법, 범죄피해자보호법을 보완하며 관련 인력을 증설하는 등의 책임 있는 행보를 보여라.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국가는 범죄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역할은 국가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라. 이를 되새기며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그 책무를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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