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가해자는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 보호시설만 만들면 되나?
서울시가 스토킹 피해자 전용 보호시설을 마련해 15일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시설을 이용하는 피해자들의 안전을 위해 시설에는 위급상황 시 경찰출동이 가능한 112 비상벨 등의 안전 장비를 설치하고, CCTV, 스마트 초인종 등을 통해 가해자의 주변 배회 여부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피해자는 안심이 앱의 귀가 모니터링을 이용하여 외출 시 자치구 관제센터에서 실시간 모니터링을 받을 수 있으며, 별도의 휴대전화를 제공 받아 보호시설 내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고, 경제활동을 위한 출·퇴근 등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87년, 국내 최초로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를 개소하여 운영하고 있다. 가해자의 극심한 추적을 막고 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 현재 한국의 모든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피해자의 신변 보호에 중점을 두고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자유로운 일상생활 영위와 가해자로부터의 피해자 신변 보호는 항상 충돌될 수밖에 없었다. 이 두 가지 지향이 공존하는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의 과제였다. 이 때문에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경찰과의 협업, 기술 개발을 통한 피해자의 일상 보장 등 다방면으로 정책을 제안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시설이 경찰과의 협업 등으로 변화된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은 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스토킹 보호시설에 마련했다는 안전장치에도 우려 점이 있다. 단적으로 스토킹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장 혹은 학교 등 기본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보호시설 입소 후에도 피해자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경우가 많아 보호시설의 위치까지 노출되는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발표한 ‘스토킹 피해 경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를 경험한 장소가 ‘집’이었다는 답변은 27.3%였으며 ‘직장’ 27.1%, ‘학교’ 15.1% 순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스토킹 피해자가 직장 및 학교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범죄의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보호 조치가 보완되어야 한다. 더불어 스토킹은 가정폭력·데이트폭력·성폭력 등 다양한 여성폭력과 복합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피해자들이 일상을 유지하며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되고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범죄에 관한 제대로 된 처벌과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격리 없이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기형적인 구조로는 스토킹 범죄를 방지하고 근절할 수 없다. 이탄희 의원실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16.8%에 그쳤다고 한다.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처벌하지 않은 채, 피해자 보호 조치만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가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결국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리는 요인이 될까 우려스럽다.
스토킹은 분명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의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 체계 마련, 사법기관을 비롯한 우리 사회 모두의 인식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근절된다. 사법부는 스토킹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여 피해자의 인권 보장에 힘써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안전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보호 조치 마련에 총력을 다하라. 그리하여 여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격리될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의 삶으로부터 격리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더 늦어서는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그 대가를 받는,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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