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난 지 11일이 지난 9월 25일, 정부와 여당이 올해 정기국회 중점법안에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추가해 신속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정안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기존 법에서 좁게 규정되어있던 온라인스토킹을 처벌대상에 추가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법원이 접근금지 및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의 잠정조치를 결정했을 경우 가해자 위치추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긴급응급조치 위반시 과태료만 부과했던 현행과는 달리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겉으로는 ‘피해자 의사 존중’이라는 모습을 띠고 있는 반의사불벌죄는, 실제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작동하여 매우 문제적이다. 이는 앞서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에서도 드러났던 문제다. 가정폭력처벌법에는 검사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가정폭력 범죄를 형사 사건이 아닌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정보호사건의 처분 결과는 대부분 불처분, 처분을 받더라도 상담위탁이나 사회봉사·수강명령 위주로 사실상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는 결과를 낳아왔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인권단체에서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초기부터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국가는 이를 방치하였고, 결국 또 한 명의 여성이 죽고 나서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고 있다.
반의사불벌죄는 국가의 여성폭력에 대한 무지와 방관의 결과다. 대부분의 여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잘 알고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로 인해 피해자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도록 종용하는 가해자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기 쉽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명확한 처벌의사를 밝히기 어렵고, 이는 가해자들이 처벌조차 받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3개월 동안의 신고건수 중 반의사불벌죄 조항으로 인해 ‘공소권없음’으로 처리된 비율은 29%에 다다르며, 최근 5년간 가정폭력 신고건수 대비 기소율은 10% 미만이다. 국가가 당연히 작동해야 할 형벌권을 포기하고 피해자 개인에게 맡기는 것은 방만이며, ‘피해자 의사 존중’을 주로 여성폭력 범죄의 처벌여부에만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의 성차별이다.
9월 20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신당역 여성살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조치를 강화했다면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했다. 여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은 피해자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여성폭력과 여성살해를 방치함으로써 자행한 성차별 때문이다. 국가는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물론이고 가정폭력처벌법에서 ‘피해자의 의사 존중’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 국가는 더 이상 피해자에게 처벌의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가해자에 대한 온전한 처벌로 국가의 역할을 다하라.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 관련 기사 :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436643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