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3월 21일, 윤석열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차기 정부 조직과 정책 과제를 수립하는 인수위원회 184명 중에 여성 정책 전문가는 없었다. 전체 18개 부처에서 파견한 직원 56명 중 여성가족부
직원만 0명이었다. 우려한 대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외치던 당선인답게 그가 조직한 인수위위원회 시작의 그 어디에도 ‘성평등 국가 실현’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여성들이 차별받는 것은 ‘옛날 얘기’라며 성차별에 대한 무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 온 당선인이었기에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시민들에게 사회 구조에 기인한 성차별적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최근 발표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연례 ‘유리 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56개국 중 성별격차 지수 108위의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도 32.5%로 가장 크다. 기업 이사 중 여성 비율도 8.7%로 최하위였으며, 관리직 비율도 15.6%에 그쳤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1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여성 살해 사건들을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1.4일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위협을 당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제대로 된 논의나 대책 없이 기존의 성평등과 여성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마저 없애려는 당선인과 인수위원회의 무책임한 행보는 명백한 퇴행이다.
세계 196개 나라가 정부 차원의 성평등 전담 기구를 둔다. 그 중 160개 나라가 한국의 여성가족부와 같이 독립부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현재의 여성가족부는 국가의 성평등을 책임지는 전담기구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웠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에 정부 예산의 고작 0.24%를 배정받은 부처의 위상은 턱없이 낮았다. 또한 성평등 정책보다는 보육, 청소년, 가족 정책에 주력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지 관점을 견지하면서 여성폭력 실태 파악과 피해자 지원, 폭력 예방을 위한 정책 수행에 힘써 온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여성가족부로는 부족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수위를 출범하며 윤석열 당선인은 ‘인수위 매순간은 국민의 시간’이며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겠다고 발언했다.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현실은 외면하면서, 최소 500억 원의 세금을 들여 집무실을 옮기는 게 ‘국민을 위한 시간’을 보내겠다는 인수위 활동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올해 여성가족부 예산 약 1.5조 중 성평등 관련 예산은 단 7.2%, 약 108억 원이다.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최소 비용의 20%에 불과한 금액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수많은 여성시민들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태를 당장 멈추라. 여성의 현실과 요구를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키며 외면하지 말고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라. 시민으로부터 위임된 임시 권력으로서 본분을 자각하고 성평등 국가 실현을 위해 책무를 다해라.
* 2022 한국여성의전화 정책제안
: 여성폭력 없는 세상, 성평등 사회를 위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10대 과제 http://hotline.or.kr/policy_proposals/73471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