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9일, 한 대형 매장에서 10대 여성을 남자 화장실로 끌고 가 강간한 남성이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유석철)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가해자는 강간 직전 다른 10대 여성 2명에게도 추행을 저질렀다. 가해자는 1심 공판 과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75건의 반성문을 제출하였고, 이에 재판부는 선고와 함께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다며 피해자와 합의해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과 ‘합의’라는 감경요소만을 고려하여 집행유예라는 가당치도 않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 산하의 독립기관인 양형위원회에서는 성범죄 양형기준 중 ‘처벌 불원(피해자와의 합의)’,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상당 금액 공탁’ 등을 감경요소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폭력 사건에서 이러한 감경요소는 올바른 판결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합의’와 ‘반성’을 감경요소로 보는 것은 여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일절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201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기조 아래서 성범죄의 41.8%가 법정형보다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고 있다.
피해자와의 ‘합의’를 감경요소로 삼아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의 의사에 맡긴다는 것은, 피해자의 용서만 있다면 국가가 처벌하지 않아도 되는 범죄로 본다는 것과 같다. 이는 여성폭력 범죄가 ‘합의하면 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여성폭력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애인, 남편 등 친밀한 관계 내에서 일어난 여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 의사를 선뜻 밝히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가해자 처벌 의사를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을 반성문 제출, 공탁금 기탁, 여성단체 기부 등으로 무분별하게 해석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박성준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선고된 성범죄 사건 중 ‘진지한 반성’이 양형기준으로 적용된 사례는 7,236명으로, 전체의 63.8%에 달했다. ‘진지한 반성’을 증명하기 위해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법원에 공탁금을 기탁하거나 여성단체에 기부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관련해서 본회에서 진행한 “여성폭력 사건에서 ‘기부’를 양형의 감경요소로 반영하지 말라!” 촉구 서명에는 단시간에 5,900여 건의 서명이 모였으며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문제에 같이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인식과는 달리, 사법부는 아직도 가해자의 시각에서 여성폭력 사건을 보고 있으며, 무분별하게 감경요소를 작용하여 여성폭력 범죄에 법정형보다 낮은 형량을 내리고 있다. 더 이상의 감형은 용납할 수 없다. 사법부는 가해자의 ‘반성’과 ‘합의’를 감경요소로 반영하지 말라. 사법부는 양형기준을 정비하고 판사들의 인식을 제고하여, 여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
* 관련 기사 : https://news.v.daum.net/v/20220104053944296
* ‘여성폭력 사건에서 ‘기부’를 양형의 감경요소로 반영하지 말라!’ 서명 바로가기 : https://forms.gle/6dDjxtcFx5NmmdXM8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화요일 ‘화요논평’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