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가 선고됐다고 징계 사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공동체 내 성폭력, 공동체의 역할을 다하라
지난 5일,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체가 해야 할 역할과 노력의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해당 사건은 검찰에서 성추행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학교에 ‘징계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고 징계 사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규정과 절차에 따른 징계를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그간의 수많은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에서 형사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공동체가 사건 조사든 조치든 차일피일 미루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2018년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병원은 성폭행 사실을 인지한 지 약 8개월 동안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가 가해자의 계약만료 하루 전 ‘감급 3개월’의 경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당시 늦어진 조치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를 기다렸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지난해 4월, 서울시청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도 언론 보도 후에야 가해자의 직무배제가 이루어져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이 일었으며, 서울시는 본 사건의 1심 판결이 나오고 사건 발생 후 10개월이 다 된 시점에서야 징계 조치를 내렸다.
내부 성폭력 사건에 임하는 공동체의 이러한 태도는 피해자의 말을 불신하고, 피해자임을 의심하는 편견의 고백일 뿐이다. 공동체 내 조치가 늦어질수록 피해자는 두려움과 불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가해자를 마주해야 하고, 공동체 내 ‘분란’을 일으킨다는 적대적 반응, 피해자를 탓하고 의심하는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의 일상회복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공동체의 역할을 다시 되짚어야 한다. 성평등한 관점의 내부규정을 마련하고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절차에 따른 신속한 사건처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사건의 조사, 징계, 결정, 조직 내 환류 등을 최대한 빠르게 조치하고 이 과정에 피해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성차별적, 폭력적 조직문화를 성찰하며,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공동체 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공동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끌어낼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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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화요일 ‘화요논평’ 2021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