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및논평
[늑장 출동, ‘가정폭력’ 오인? 경찰청은 쇄신하라!]
대법원은 오늘 살인사건 현장에 늦게 출동한 경찰들의 직무상 과실을 인정하여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한다. 늑장 출동에 대한 정부 배상책임은 당연한 일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늑장 출동의 이유에 있다. 25분 전 신고된 ‘가정폭력’사건으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2012년에도 있었다. 한 여성이 성폭력으로 신고했는데, ‘부부싸움’같다며 경찰이 미흡하게 대처했던 사건. 결국 그 여성은 잔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라는 당시 녹취록이 뒤늦게 공개되어 큰 공분이 일었다. 당시 본 사건의 관련자들은 징계되었고 경찰청은 종합개선대책을 내놓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대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묻는 말에만 대화를 하자니까요.”
“여기 계신 이유가 뭐예요, 그분들이?”
“찾아왔으면 적어도 민원인 아니에요. 우리 경찰 민원인도 되고. 또 여기 민원인도 되고.”
“나도 애가 있는데...”
최소한 다른 직무를 맡은 경찰보다는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들이 가해자가 침입한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이하 쉼터)에 출동해서 한 말들이다. 얼마 전인 11월 2일의 일이다. 이들은 가정폭력에 대한 전문성은커녕 신고자인 쉼터 활동가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쉼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가해자를 ‘민원인’으로 둔갑시키고, 가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방관하는 사이, 또다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쉼터 입소 여성들과 아동들을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긴 것은 활동가들이었다.
이를 불씨로 지난 11월 10일,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다. 삼일 만에 약 20만 건의 트윗 언급이 있었다. 대부분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에 대한 경찰의 잘못된 대처를 고발하는 글이었다. 경찰들이 가해자를 이해하고 화해하라고, 그 사람의 인생도 생각하라고, 이런 일까지 신고하면 어떻게 하냐고,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증거를 내놓으라고 했다는 증언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토록 경찰에게 훈계 받고, 의심당하고, 무시당하는 범죄피해자가 있는가. 가령, 경찰은 절도 피해자에게 그 물건이 원래 당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하는가, 잠금장치를 안 했다고 훈계를 하는가, 가해자의 인생을 이해하라고 하는가,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는가.
피해자가 여자든 남자든, 가해자와의 관계가 부부사이이든 모르는 사이이든, 집 안에서 일어났든 집 밖에서 일어났든 모든 범죄피해자는 그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여성이어서, 가해자가 남편이나 애인이어서, 집안에서 일어난 ‘집안일’이어서 마땅히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본회는 11월 2일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향후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공문을 지난 11월 9일 경찰청으로 발송한 바 있다. 그러나 답변을 주기로 한 오늘까지 회신은 없는 상태다. 아, 같이 차를 마시자고 했던가.
전국 곳곳에서 경찰에 의한 피해를 고발하고 있다. 이 목소리들을 새겨듣고 경찰청은 진정으로 사죄하고 각성해야 한다. 경찰이 ‘가정폭력’, ‘부부싸움’ 등으로 미진한 대응을 하는 사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삶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경찰은 이 땅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쇄신하라.
그러나 경찰교육을 하겠다, 초동대응을 강화하겠다,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은 20년 전에도 세웠던 계획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올해는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171114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5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