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성폭력 피해자 A씨를 무고죄로 법정구속 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을 규탄한다.
-어째서 성폭력가해자가 아닌 성폭력피해자가 구속되어야 하는가? -
지난 2013년 5월, A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가해자에 의해 성폭력피해를 당해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검사는 ‘피해 후 상당시간이 지났다,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 등의 이유로 A씨를 무고죄로 기소하였다. ‘성폭력피해자’였던 A씨는 졸지에 무고의 ‘피의자’되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5월 14일, A씨는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6 단독 재판부에서 ‘무고죄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았다. 판사는 ‘강간죄는 매우 위중한 범죄이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음에도 무고한 사람을 고소하였기에 무고죄로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며,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했다. 선고를 받은 A씨는 “나는 합의된 성관계를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다”라며 울부짖었다.
A씨는 외국생활로 한국 상황을 잘 알지 못해 고소절차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몰랐고,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알지 못했다. A씨가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A씨는 이미 검사의 무고인지로 인해 무고죄의 피의자가 되어 있었다.
성폭력 사건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반된 주장을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의 특성과 피해자의 상황과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사건 역시 가해자는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 주장하고 있으나, 피해자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니었으며, 분명한 거부의사를 표현하였다. 검찰은 객관적 증거의 부재와 세세한 부분에 대한 기억을 문제 삼고 있으나, 이는 성폭력이라는 혼란상태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성폭력 피해를 회상하는 것은, 다시 성폭력을 당하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사건에 대한 세세한 기억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현 정부는 성폭력을 4대 악으로 규정하고 4대악 근절을 위해 힘쓴다고 밝힌바 있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 A씨도 정부의 약속을 믿고 법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기대하며 ‘용기’를 내어 고소했다. 그러나 용기 있는 고소의 결과는 성폭력피해자를 무고죄 피의자로 법정구속 당하게 만들고 말았다. A씨뿐 아니라 많은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무고’에 대한 압력과 협박으로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013년 4월 2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은 고소인 진술 이외에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고, 폭행·협박, 위계·위력 등 처벌에 필요한 일정 유형력이 존재함이 없이 단순히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의 경우에도 고소에 이르는 경우가 있어, 단순히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또는 법적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 자체를 허위라고 판단하여 무고인지 하여서는 아니 되고 무고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매우 달라 검사들이 성폭력피해자들을 무고죄로 기소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은 사법기관의 남성중심적인 강간죄 법규 적용과 해석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수사과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무고죄 적용에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은 법적절차인 고소를 통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피해자를 좌절케 하고 무력화시킨다. 결국 피해자는 스스로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근절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피해자를 상담하고 인권회복을 위한 지원 등 현장 활동을 바탕으로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적용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예외조항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 예외조항이 마련되지 않는 한,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을 고소하는데 있어 무고죄의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여야만 한다.
A씨의 어머니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재판이 끝난 후 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피해자에게 무고죄를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 A씨의 무고죄가 무죄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지원할 것이다. 우리는 서부지방법원 합의부 재판부가 정의와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할 것을 기대하며 그 결과를 끝까지 지켜 볼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성폭력피해자 A씨를 즉각 석방하라.
정부는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 예외조항 마련하라.
정부는 성폭력근절정책 전면 검토하라.
2014. 5. 15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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