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일, 보도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살인 범죄 피해자 4명 중 1명(778명 중 192명, 24.6%)은 전·현 배우자, 사실혼, 전·현 애인 등 친밀 관계 상대방으로부터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피·가해자 관계를 분류해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 규모를 파악한 건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여전히 피•가해자 관계별 성별 통계는 발표하지 않아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 의해 얼마나 피해를 겪고 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지난 2021년 12월, 경찰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범죄통계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통해 여성 대상 폭력 통계를 개선하고, 여성 피해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여성 대상 범죄와 관련 초동 대응 전략을 세심하게 수립하겠다’고 했으나 가장 중요한 성별 구분은 뺀 반쪽짜리 통계만 내놓은 셈이다.
그동안 국가가 파악하지 않은/못한 친밀한 관계에 의한 여성 살해 통계의 부재는 한국여성의전화가 채워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매년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지난 15년간 한국여성의전화가 집계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79명, 미수 포함 3,058명, 주변인 피해까지 포함하면 3,773명이다. 15년간 최소 1.79일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여전히 살인 범죄 통계에서 피•가해자 관계별 성별 구분은 시스템 상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해당 집계를 지금까지 발표한 이유와 요구는 분명했다. 국가에서 발표되는 그 어떤 통계에서도 여성살해의 원인과 현실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는 여성살해의 발생 원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특성, 사건이 발생한 상황 등을 파악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친밀한 관계에 의한 여성 살해 범죄의 패턴을 이해하고, 살인에 이르기 전 예방 조치를 마련해 더 이상의 죽음을 만들지 말아야 할 책무가 있다. 국가적 차원의 여성살해 통계 발표는 이러한 책무를 실천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그러나 오늘 보도를 통해 접한 경찰의 통계 발표는 참으로 의아하다. 기존 범죄 통계에서 이미 성별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피•가해자 관계에 따른, 살인 선행 원인행위에 따른 성별 구분이 어렵다는게 말이 되는가. 이는 국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파악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 발생 현황 등에 관한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이를 정기적으로 수집ㆍ산출하고 공표하여야 하며,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ㆍ지원 등을 위하여 필요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국가는 여성에 대한 폭력 실태 파악을 못 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 여성폭력 범죄 실태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을 통해 여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 실현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
*관련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54354.html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