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0일,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제9회 국무회의가 열렸다. 세계여성의날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이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3건, 법률안 2건, 대통령령안 11건, 일반안건 2건이 심의·의결되었고, ‘성평등’과 관련한 사안으로는 생리용품 지원 확대 방안, 보복범죄 및 친밀한 관계 내 범죄 방지를 위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제도 개선, 경력보유여성 및 일·가정 양립 지원 방안 등이 보고되었다.
국무회의에서는 무상 생리대 공급 시범사업을 두고 비교적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사업 방식과 시행 시기, 예산, 향후 본사업 계획까지 세부적으로 검토되었고, 대통령은 이를 두고 “결국 정부의 의지와 실천의 문제”라며 단독 업체가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할 수 없게” 물가 관리를 지시했다.
반면, 보복범죄와 스토킹, 교제폭력 대응 방안은 전혀 다른 밀도로 다뤄졌다. 법무부는 형사절차 통지제도 및 관련 시스템 개선, 범죄피해자 통합지원시스템 구축, 스토킹범죄 잠정조치 제도 개선, 전자감독제도 강화 등을 보고했고, 대통령은 이를 “당연히 해야 될 일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평등가족부 역시 온라인 스토킹 피해 정보 삭제 지원, 위험군 피해자 대상 경찰·상담소 공동 모니터링, 교제폭력 피해자 지원 근거를 스토킹방지법과 처벌법 개정안으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대통령은 “스토킹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보호조치 미흡으로 추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가끔씩 언론에 나던데 그런 상황 발생하지 않게 잘 챙겨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장면은 정부가 지금 무엇을 성평등 정책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생리용품 지원과 월경권 보장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생리용품 지원은 전면에 부각하면서도, 여성폭력 대응은 피해자와 현장, 시민사회의 요구가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채 형식적이며 행정·입법 편의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정부가 여성의 존엄과 생존, 자유의 문제를 후순위로 두고, 여성을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지원과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여성폭력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피해자의 죽음을 방치해 온 정부가,1) 정작 여성폭력 대응에는 안이한 대책만 내놓으면서 생리용품 지원에만 구체성과 실행력을 보이는 현실이 참담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위험군 피해자 대상 경찰·상담소 공동 모니터링 실행 계획이다. 국가가 더 면밀히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가해자를 제대로 입건도 하지 않은 채 신고한 피해자만 관리 대상으로 삼는 것은 피해자 보호라기보다 피해자 통제에 가깝다. 왜 국가의 시선과 제도는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에게 향하지 않는가.
교제폭력 피해자 지원의 법적 근거를 스토킹처벌법 체계 안에서 마련하겠다는 방침 역시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이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특성과 그 치명성을 외면한 채, 행위의 양태만 규율하는 기존 스토킹처벌법에 교제폭력을 억지로 끼워 맞추겠다는 발상이다. 오늘날 친밀한 관계는 더 이상 혼인 여부만으로 구분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은 포괄적인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혼인 여부에 따라 법적 대응 체계를 달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기소율 1.2%에 불과한 가정폭력처벌법의 한계는 외면한 채, 교제폭력을 다시 스토킹처벌법 개정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접근은 납득하기 어렵다.2) 이는 정부가 교제폭력을 포함한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조차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더구나 이런 문제제기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무부의 입법 추진 계획 역시 여성폭력에 대한 몰이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한계를 지닌 대책이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예방과 성평등 정책의 주무 부처인 성평등가족부를 통해 다시 제시되었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피해자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책임을 대신할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특수성과 위험성을 정확히 반영한 입법과 제도로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여성의 안전과 존엄을 사후적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즉각 보장해야 할 기본권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여성을 복지의 수혜자나 관리의 대상으로 호명하지말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자 존엄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