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일상복’ 입은 여성 불법촬영하면

성폭력이 아니다?

 

지난 10월 24일 의정부지방법원(부장판사 오원찬)은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의 뒷모습 하반신을 불법촬영한 것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 촬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1심 유죄 판결(벌금 70만 원,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24시간)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것에 더해 판결문에 가해자가 찍은 불법촬영물을 무단게재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의 근거로 ▲ 피해자 여성의 직접 노출된 신체 부위는 목과 손, 발목이 전부 ▲ 단순한 피해자 뒷모습 하반신 촬영(엉덩이 부분만 확대 촬영하지 않음) ▲ ‘젊은’ 여성이 ‘레깅스’를 입었다고 성적 대상화된다고 볼 수 없음(레깅스는 일상복) ▲ 피해자가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성적 수치심을 드러낸 것은 아님(합의 사실 거론) 등을 들었다.

 

이는 남성이 성적 욕망을 느끼는 노출 범위 및 신체 부위,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신체 부위가 존재하며 이를 벗어날 경우 성폭력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가해자가 피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비인간화하며 불법 촬영을 감행했음에도, 재판부 또한 피해 여성의 신체를 비인격화해 분절하고 성적 욕망 및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끼는 부위가 따로 있음을 판결의 근거로 삼고 있다(이들이 말하는 ‘성적 욕망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 부위’는 여성의 가슴, 엉덩이, 음부로 흔히 분류된다). 

 

판결문에 피해자의 신변보호는 등한시 한 채 피해자가 찍힌 불법촬영물을 버젓이 무단 게재한 행위는 성인지적 관점이 부재한 재판부의 인식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재판 과정 중 피고인을 포함한 사건 관계자들이 판결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판결이 확정된 뒤에는 사건 관계자들의 공개 허용 여부에 따라 일반 대중도 해당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불법촬영물을 부착함으로써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에 해당하는 불법촬영물 유포죄를 범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피해’를 가하는 셈이다.

 

이번 판결을 두고 미디어 및 네티즌, SNS 사용자들 사이에서 “시대착오적 발상”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법원이 결정하나” “피해자에게 2차피해를 가하는 법원”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20년을 두 달 앞둔 시점이다. 사법부는 언제까지 성인지적 관점이 부재한 판결로 여성의 안전보장은커녕 이를 위협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1심과 비교하면 이번 판결은 재판부의 불법촬영물에 대한 비범죄화 의지까지 의심하게 한다. 사법부는 ‘일반인의 관점’ ‘합리적 의심’을 빙자한 주관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기계적 잣대를 버리고, 성폭력 사건의 본질에 입각한 제대로 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191105

* 관련기사 :  http://omn.kr/1lhqb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5 [강간죄 개정을 위한 릴레이 리포트 1탄] 술과 약물에 의한 성폭력, 동의 여부로 바뀌어야 한다 진해여성의전화 2023.07.06 16
164 (화요논평) 성폭력에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불쾌감을 느껴 무죄? admin 2023.05.30 3
163 (화요논평) 차별과 폭력 양산하는 정상가족주의 해체하라 – 생활동반자법 발의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3.05.18 0
162 (화요논평) 성범죄 가해자에게 악용되는 국민참여재판, 이대로는 안 된다 - 작년 한 해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53%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3.05.09 2
161 (화요논평) JTBC는 조직문화 쇄신하고, 반복되는 성폭력을 멈춰라 진해여성의전화 2023.05.09 1
160 (화요논평) 신당역 '여성 살해' 사건 200일, 스토킹 처벌법 제정 2년 달라진 것은 없다 진해여성의전화 2023.05.09 0
159 (화요논평) 성범죄 의료인 자격 제한,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 국회는 하루빨리 의료법 개정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3.04.06 10
158 (화요논평) 2022 분노의 게이지 -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1.17일에 1명 진해여성의전화 2023.03.16 6
157 (화요논평) ‘폭행·협박’ 없다고 무죄 선고받은 군대 내 성폭력 가해자라니 - ‘비동의 강간죄’ 도입, 더는 미룰 수 없다 진해여성의전화 2023.03.16 5
156 (화요논평) 성희롱과 임금차별이 ‘청년의 노동권 보호’로 해결 가능하다고? - 고용노동부의 중소금융기관 기획감독 결과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3.03.16 2
155 [화요논평] '여성' 삭제한 '여성가족부' 업무 추진계획-행정부의 '여성' 지우기, 당장 중단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3.01.30 7
154 (화요논평) 벌써 두 명의 여성이 죽었다 -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진해여성의전화 2023.01.11 5
153 (화요논평) 기존 통계의 나열로 그친 ‘첫’ 여성폭력통계 잘못된 정책생산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진해여성의전화 2023.01.11 3
152 (화요논평) 감호시설만으로 부족하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안전을 위해 가해자 처벌 강화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3.01.04 1
151 ( 화요논평) 스토킹 가해자는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 보호시설만 만들면 되나? 진해여성의전화 2022.12.29 1
150 (화요논평) 여성폭력을 여성폭력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정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명백한 본질 호도다. 진해여성의전화 2022.12.07 2
149 (화요논평) '성평등','성소수자' 삭제될 수 없는 가치, 2022 교육과정 개정안 즉각 폐기하라. -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2.11.30 6
148 (화요논평) 전화 안 받았으니, 스토킹 무죄? 판사 교육 의무화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2.11.11 6
147 (화요논평) 공공기관 성폭력 사건 1년간 보고된 건만 922건, 여성가족부는 '발전적 해체'?-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닌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하라! 진해여성의전화 2022.11.02 4
146 (화요논평) "말” 뿐인 대책 말고 진정한 피해자 권리 보장 실현하라 - 스토킹처벌법 시행 1년에 부쳐 진해여성의전화 2022.10.28 3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