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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에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었다. 본 법안은 성별과 관계없이 성인 2명이 합의해 동반자 관계가 되면, 동거‧부양의 의무와 함께 혼인에 준하는 법적 권리를 갖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으나 이미 존재하는 혼인하지 않은 동성 및 이성 커플, 가정폭력 등으로 원가족과 단절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꾸린 사람들, 그 외 돌봄을 나누는 동거 관계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제도권 안에서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2020년 여성가족부 사회조사에서 응답자의 69.7%가 ‘혼인·혈연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답한 바 있다. 이처럼 생활동반자법은 다양한 가족이 인정되길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과 변화된 사회적 인식, 이를 추동해 온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발의된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은 2014년 초안이 마련되어 이에 관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으나, 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021년 4월 여성가족부는 그간 시민사회에서 제안해 온 법안보다 다소 소극적인 형태인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마저도 2022년 9월에 번복한 바 있다. 이는 정부가 정책 기본 단위를 성별이 다른 여남, 그들을 중심으로 한 혈연관계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가족만을 국가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정상가족주의’를 고수하는 입장임을 드러낸 것이다.

 

국가가 가정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가정폭력처벌법에서도 드러난다. 가해자를 처벌해야 할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이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로 정의되어 있다. 그 결과, 가정폭력처벌법 전반의 패러다임은 ‘가정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법적 처리를 가로막고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아 가정폭력이 반복·양산되는 현실은 통계로도 드러나고 있다. 2021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218,680건 중 검거된 인원은 46,041명으로 약 2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거 인원의 54%는 형사사건이 아닌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었으며, 신고 건수 대비 가해자 구속률은 0.2%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가정폭력 가해자는 형사처벌되지 않고 피해자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가가 가족구성원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사실상 가정 내 차별과 폭력을 용인하는 것이다.

 

국가는 가족구성권의 확대와 제대로 된 가정폭력 가해자 처벌을 위해 싸워온 시민들의 요구를 더는 막을 수 없다. 국가는 지금 당장 시민의 인식을 반영하여 실재하는 모든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시민이 주체적으로 평등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라. 또한, ‘가정 유지 관점’의 가정폭력처벌법을 ‘피해자 인권 보장’으로 법 전반을 정비하여 가정폭력을 근절하라.

 

매년 5월 한국여성의전화는 전국 24개 지부와 함께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을 선포하여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3년 캠페인의 주제는 <가해자 처벌 없는 가정폭력‘처벌’법>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건강가정기본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안정되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가정생활을 영위할 권리’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30504143700530?input=1195m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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