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는 궤변
-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에 부쳐
7월 15일, 인하대학교 교내에서 한 학생이 추락한 채 발견되어 끝내 숨졌다.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된 이는 다름 아닌 같은 학교 동급생이었다. 그는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인정하였고, 살인 혐의에 대해 조사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여성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여성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다시금 드러냈다. 그러나 누리꾼과 언론을 비롯하여 제대로 된 반성과 대책을 내놓아야 할 대학과 정부까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노력보다 여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통념을 기반으로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의 탓’ ‘개인적 문제’ 등으로 축소·왜곡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선정적이거나 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여 사건을 보도하고, 기사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에게 ‘왜 만취했느냐’며 비난의 눈길을 보내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조심하라’며 여성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반응이 넘친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캐내려는 시도 역시 끊이지 않는다. 또한, 사건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음주했다는 이유로 사건의 원인을 ‘무분별한 음주’로 분석하기도 하고, 대학과 교육부는 건물의 야간 출입 통제, CCTV 증설 등을 대책으로 내놓으며 불평등한 성별 권력 관계에 기반을 둔 여성폭력 사건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24일 한 인터뷰에서 해당 사건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닌 성폭력 사건’이라며, 여성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황당한 발언을 늘어놓았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이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관련 특별법과 피해자 지원체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부족하나마 법제화를 이루어낸 결과임을 조금도 모르는가. 1979년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1993년 UN 여성폭력철폐선언, 1995년 북경 선언 및 행동강령 등 국제사회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철폐를 위해 만들어온 각종 조약, 협약, 선언의 첫 장도 읽어보지 않았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젠더에 근거한(gender-based) 것이며, 폭력을 하겠다는 협박, 강제, 임의적 자유박탈을 포함한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는 말로 여성폭력의 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착각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말에 동조하며 여성폭력 근절과 성평등 실현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망각하고자 하는 자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하다. ‘재발 방지’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공허한 구호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여성폭력의 본질에서 시작하라.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가해자를 엄하게 벌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가는 여성폭력 및 여성살해 통계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예외 없는 가해자 처벌, 빈틈없는 피해자 지원, 2차피해 방지 체계 구축 및 인식개선 등을 통해 여성폭력 범죄를 국가가 묵인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언론은 성폭력범죄 보도 기준을 준수하여 2차피해를 최소화하고, 학교를 비롯한 공동체는 성평등한 관점의 내부규정 마련, 절차에 따른 신속한 사건처리를 보장해야 한다. 여성들은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성차별적·폭력적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한 연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관련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330071?sid=102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