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많은 아내들이 죽어야 하나.
아내폭력 실태 제대로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초동 조치하라!
지난 8월 한 달 동안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아내 살해’ 사건은 중복을 제외하고 10건이었다. 2건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8건은 법원 판결문을 통해 알려졌는데 살인 미수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그러나 이는 보도를 통해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일 뿐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다. ‘아내 살해’는 수사기관이 생산하는 범죄통계에서부터 자취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범죄통계인 ‘경찰 범죄통계’와 ‘대검찰청 범죄분석’ 중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 분류에 ‘배우자’는 없다. 실태 파악은 문제해결의 첫걸음인데 분석하고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뜻과도 같다.
아동학대나 노인학대는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아내폭력은 부부 사이의 불화나 갈등으로 사소하게 여겨진다. 아내폭력이 기어코 아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해야 주목받고, 범죄라고 여겨지는 것을 우리는 빈번하게 보아왔다.
최근의 사례에서 법원과 경찰이 여전히 얼마나 아내폭력을 가볍게 여기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9월 3일 강서구에서 남편에게 흉기로 살해당한 여성은 이혼소송을 하면서 접근 금지를 신청했지만, 법원은 석 달 가까이 결정을 하지 않았다. 같은 날 최종환 파주시장이 십여 년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저질러온 정황이 드러났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보다 최 시장과 담배를 같이 피우러 나가는 등 원칙에 벗어난 초동조치를 하고, 심지어 그 직후 사건을 종결시켰다.
가정폭력범죄에 대하여 신고를 받은 경찰은 지체 없이 현장에 출동하여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며, 현행범인의 체포 등 범죄 수사를 하여야 한다. 위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직권으로 퇴거, 격리, 접근금지 등의 긴급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경찰은 가정폭력에 대한 초기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 6월부터 '가정폭력 위험성 조사표' 항목을 세분화하고, 모든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현장 경찰관이 조사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 가정폭력 현장의 객관적 위험성을 수치로 평가해 현장 경찰관들이 긴급임시조치 시행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지만 현장에서 대응 매뉴얼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두려워서 혹은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예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가해자인 남편이 현직 경찰관이자 몇 개월 전까지 여성청소년 수사팀의 수사관이었다고 밝히며 공정한 수사를 호소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 A씨는 가정폭력 사건을 신고해도 사건 발생 주소지 관할 경찰서인 남편이 재직 중인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배정되는데 남편의 친한 선후배, 동료로 구성된 근무자들이 어떻게 공정한 수사를 해주겠냐며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이 가정폭력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 이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명절이다. 경찰이 지난해 추석 기간에 발생한 사건을 분석한 결과, 평소보다 가정폭력은 43.8%, 성폭력은 15.4%, 데이트폭력은 22.2%나 신고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휴가 끝나고 또 얼마나 많은 가정폭력 기사를 접하게 될 지 벌써부터 심히 우려된다.
아내폭력은 ‘막을 수 없어’ 발생하는 것이 아닌 ‘막지 않아’ 지속되고 강력 범죄로 발전한다.
피해자의 ‘접근금지’ 요청보다 가해자의 ‘아이들을 보러 왔다’는 변명이 수용되는 현실에서, 6차례 이상 가정폭력으로 신고 된 전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정신병이 있다’라는 변명이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아내살해’는 예고된 범죄였다. 아내폭력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그 심각성에 대해 똑바로 인지하고 폭력 현장에서 제대로 된 초동조치로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라!
2021년 9월 16일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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