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살인을 용인하는 사회, 도대체 몇 명의 여성을 더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 데이트폭력에 의한 피해자 사망 사건에 부쳐
8월 17일, 한 명의 여성이 남자친구의 무자비한 폭행 끝에 사망했다. ‘연인관계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는 것이 가해자가 밝힌 폭력의 이유였다. 8월 26일과 29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남성은 ‘성관계를 거부해서’, ‘데이트비용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거절해서’ 두 명의 여성을 살해했다. 그리고 8월 31일, 또 다른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된 여성이 발견되었다. 2021년 오늘을 사는 여성이 겪는 현실을 드러내기에 ‘여성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라는 표현은 얼마나 인자한가. ‘여성살인을 용인하는 사회’라 불러야 마땅하다.
데이트폭력으로 여성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정부는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피해자 신변보호 강화,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을 약속했다. 2018년 2월, 정부는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데이트폭력을 피해자와의 관계를 악용한 폭력 범죄로 규정하고 범죄 발생 징후가 있거나 발생 시 폭력성·상습성 여부 등을 상세히 확인할 것임을 공표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현실은 어떠한가. 본회가 발표한 지난 3년간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따져봐도 최소 702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처했다. 1.6일마다 1명꼴이다. 국가는 여성폭력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국회도 마찬가지다.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은 발의와 회기만료 폐기를 반복하고 있고, 가정폭력처벌법에 데이트 관계를 포함해 입법 공백을 메우겠다고 하고 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관계 유지’가 우선이다. 가해자 처벌 대신 ‘가정 회복’을 목적으로 가해자를 ‘보호처분’하고 있다. 가해자 상담, 수강명령, 성행 교정, 사회봉사 따위로는 폭력도, 살인도 멈출 수 없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임을 명확히 하고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이 제대로 된 시작이다.
지난 8월 25일, 황망하게 딸을 잃은 어머니는 이 같은 일이 다른 여성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해자의 구속 수사와 데이트폭력 가중처벌법 신설’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시작했고, 8월 31일 현재 이미 36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하였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는 우발적인 행위가 아닌 지속·반복적인 폭력의 연장선에서 발생한다. 가해자의 범행은 선택된 행동이며, ‘친밀한’ 관계 특성상 피해자의 개인정보, 취약점을 악용하며 상습적이고 계획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며 범죄의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처벌되어야 하는 이유다.
범죄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기본 책무가 지켜지기 위해 몇 명의 여성이 더 죽어야 하는가. 국가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제대로 처벌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친밀한 관계 내 폭력 발생 시 가중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친밀한 관계의 특성을 고려해 반복성·지속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수사하여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라. 더불어 여성폭력에 대한 정부 정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 당신과 함께 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10831
* 데이트폭력에 의한 피해자 살인사건 유족에 의한 국민청원 https://bit.ly/3DBMMS3
* 데이트폭력에 의한 피해자 의식불명 기사 https://bit.ly/2Yfskq2
* 전자발찌 훼손 후 도주한 가해자에 의한 여성살해 사건 기사 https://bit.ly/2WzVw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