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호'하지 못한 '신변보호조치'
- 제주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자녀 살해 사건에 부쳐
지난 18일 제주에서 사실혼 관계였던 전 파트너에 의해 폭력 피해를 입은 한 여성의 자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7월 초부터 지속적으로 불안함을 호소하며 신고 및 신변보호 요청을 했으나 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 없이 CCTV 설치, 주거지 순찰 등의 보호조치만 집행되었다. 조치 과정에서 실시간 신고 및 위치 확인이 가능한 스마트워치가 바로 지급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경찰의 스마트워치 미지급에 초점을 맞추어 경찰의 미흡한 피해자 보호조치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논쟁만으로는 본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 사건처럼 심각한 가정폭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체포 및 처벌, 피해자 신변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는 낯선 장면이 아니다.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상과 생활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폭력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피해자가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친밀한 관계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조사 및 처벌하기보다 그 심각성을 축소하기 일쑤다. 본 사건 역시 가해자는 자녀 살해를 자행하기 전에도 반복적인 폭력으로 피해 여성을 위협하였고, 동종 전과가 있는 등 재범위험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고, 재범위험성 평가를 통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음에도 적극적인 조치가 부족했던 것은 현장 경찰의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과 안일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폭력의 원인인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스마트워치도, 그 어떤 신변‘보호’조치도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충분치 못한 피해자 보호조치도 문제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발표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에 따르면 전체 폭력 피해자 중 20%가 피해자 주변인인 피해자의 자녀와 부모, 친구 등이었다. 특히 주변인 중에서도 피해 여성의 자녀가 피해를 입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렇듯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경우 주변인에 대한 피해도 심각하지만 현행 법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만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임시조치, 피해자보호명령 등이 피해자 및 가족구성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사기관이 그 심각성을 축소하고 주변인에 대한 피해를 부수적인 피해 정도로 인지한다면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27일 오전 경찰은 신변보호 강화를 위해 스마트워치 추가 확보 및 보급, 실태 현장점검, 담당자 교육, 인공지능형 CCTV 도입 등을 포함하여 ‘범죄피해자 보호 종합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마땅한 처벌이 최우선으로 필요하다. 언제까지 피해자가 ‘조심’하며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가? 경찰은, 나아가 우리 사회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심각한 범죄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건의 위험도에 따라 가해자를 즉각 체포 및 조사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의 주변인도 직접적인 피해자임을 인식하고 이에 맞는 충분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보호조치를 위반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도 강화되어야 한다. 여성폭력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여성폭력 처벌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보완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여성폭력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