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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제대로 된 스토킹범죄처벌법이 필요하다
서울에서만 주거침입성범죄가 5년간 300여 건이 발생했다. 그중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신림동이다.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국민청원까지 올렸던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한 지 4개월 만에, 또다시 신림동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뒤따라 공동현관문까지 들어갔다가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일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남성은 그저 술에 취해 옥상에 바람을 쐬러 가기 위함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하며, 경찰은 그를 ‘주거침입’ 혐의로 불구속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피해자의 측은 언론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건이 ‘이미 수차례 반복된 일이고 이번 달 안에 이사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스토킹을 경험한 여성 중 2회 이상의 반복적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9.4%이다. 그러나 이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범죄를 단순 주거침입만으로 입건하는 것은 수사단계에서 범죄혐의에 대한 판단을 협소하게 한 문제도 있지만,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은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에 부과하는 범칙금 8만 원이 전부다. 같은 금액을 부과하는 경범죄로는 장난전화, 간판훼손, 관명사칭, 도움이 필요한 사람 신고 불이행 등이 있다. 과연 스토킹이 이와 같은 범죄와 동일 선상에서 다뤄져야 할 성질의 것인가.
국회에서는 1999년부터 스토킹범죄처벌법이 발의되었으나 모두 폐기되었고, 현재 20대 국회에서 또한 7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이렇다 할 논의조차 없는 상태다. 국정감사 기간임에도 파행을 거듭하는 국회를 봤을 때, 이번 국회에서도 스토킹범죄처벌법안이 논의되고 통과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선공약으로 젠더폭력 근절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또한 ‘스토킹범죄 처벌강화’를 약속했지만, 지난해 법무부가 발의한 스토킹범죄처벌법안이 형식적이고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후 그 어떤 속도도 내지 못하고 있다.
스토킹은 흔히 알려진 바대로 따라다니거나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행위에서부터 목숨을 위협하는 범죄로까지 스스로 진화하는 범죄이기에 스토킹처벌법에는 단순한 행위의 나열이 아닌 포괄적 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피해자의 범위 또한 당사자뿐 아닌 생활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주변인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반복되고 진화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강력한 초동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신고해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가 이사 가고,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고, 휴대전화번호를 바꾸는 등 자신의 주거 및 생활형성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고 피신해야 하는 현실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반복적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능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신림동 일대에 반복되는 동종 범죄가 문제가 되자 해당 경찰서는 “여성 주거 밀집 지역에 기동순찰대 등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보안성이 좋은 현관문 잠금장치와 휴대용 비상벨 등을 설치해주는 '안심홈'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며, “피해자에겐 스마트 워치를 지급”한다고 했다. 이는 여성폭력방지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정부의 ‘여성친화도시’, ‘여성안심도시’와 맥을 같이 한다. “어두운 밤길에 태양광 가로등을 설치”하고, “여성들에게 현관문 보조키를 보급”하고, “전봇대에 비상벨을 설치”하고, “외딴 길을 동행”해 여성폭력을 방지하겠다는 이 같은 정책은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조심하라는 메시지 이상을 주지 못한다.
그 어떤 가로등과 현관문 잠금장치와 비상벨로도 스토킹범죄를 막을 수 없으며, ‘여성이 안전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할 수사·사법기관의 인식 및 태도의 변화가 수반될 때 비로소 스토킹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화요일 ‘화요논평’ 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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