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서 폭행과 협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제추행 무죄 판결한 대법원 규탄한다
속옷차림으로 20대 여직원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더 위로, 다른 곳도 만져라"라고 요구하여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1심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80시간 수강)을 확정하였다.
이번 판결은 성폭력의 요건을 최협의로 해석하여 수치심을 느끼는 신체 부위와 아닌 부위를 구분하고, 강제력의 요소를 물리적으로만 한정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판결이다.
십여 년 전인 2004년, 대법원은 "추행은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피해자 의사에 반해 피해자가 혐오감을 느꼈다면 추행"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삼았던 2004년의 판례를 오히려 역행했다.
또한 이번 판결은 강제추행이 폭행,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다 하여도, 피·가해자의 관계에 따라 폭행과 협박은 물리적 강제력만으로 나타나지 않기에 폭행과 협박의 개념을 확장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점, 업무상 관계는 생계와 직결되어 관계자체가 위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간과하여 결과적으로 성폭력의 개념을 축소시키고 피해자의 인권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범죄 근절 대책’은 물론, 성폭력을 척결해야할 4대악으로 보고, 성폭력 예방에 집중하고 있는 국가 정책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뿐 아니라 올해 1월, 집에 방문한 여직원에게 “자고 가라”며 손목을 잡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1,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을 파기하고 지법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전 국민이 성폭력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있는 시대,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개념화하는 시대, 신고하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될 것이라 ‘외우는’ 시대에 대법원은 대체 성폭력을 무엇으로 인지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통탄할 노릇이다.
2015년 5월 14일
한국여성의전화